Wolfach Carnival




독일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유명하다는 말은 독일 오기 전에 들어서 나름 기대하고 있었는데, 카니발은 언제하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오늘이 (오래 계속되는 카니발 행사 중에서 가장 큰) 카니발 마지막 날이라고 해서 다른 워크샵 참가자들과 함께 아랫동네에 내려가서 오후 한나절 구경을 했다. 인구가 6천밖에 안되는 작은 마을인데 카니발 행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3천이라니까 정말 온 마을이 함께하는 잔치라 할만 하다.

오후 2시경에 아이들의 행진부터 시작해서 치렁치렁한 드레스에 양산을 받쳐든 여자들과, 각종 광대와 마녀, 괴물 복장을 한 사람들이 차례로 행진을 하더니, 현장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바로 삶아주는 소시지와 커다란 프렛첼 빵으로 요기를 하고는, 다들 동네 술집에 들어가서 맥주들 들이키면서 왁자하니 놀다가, 오후 5시경부터 카니발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마지막 남자들의 행렬이 시작되었다.

남자들의 행렬은 우선 요란하고 시끄럽기가 그지 없는데, 행렬에 참가한 남자들이 하나씩 소리내는 도구 - 뿔피리, 딱딱이, 냄비, 호루라기, 기타등등 - 을 들고 있는 힘껏 소음을 내는 것이다. 또 행렬에 참가하는 남자들은 반드시 인조 코를 달고 모자를 쓰는데, 코 장식도 상점에서 팔 듯한 평범한 인조 코부터, 크리스마스 장식, 애기 젖꼭지, 장미꽃 등등 종류도 다양하고 크기도 천차만별이다. 이 남자들이 길게 열을 지어 마을 중심가 - 그래봐야 좀 널찍한 길 하나일 뿐이지만 - 를 꾸불꾸불 돌아가며 상점들과 동사무소, 파출소까지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계속 행진하는 것이다. 그러면 예컨대 빵집에서는 예의 커다란 프렛첼 빵을 내어 행렬 참가자들을 대접한다. 이 행렬의 절정은 마을 중심가 한쪽에 있는 분수대를 도는 것인데, 남자들의 행렬에 몰래 끼어든 여자가 발견되면 주위 남자들이 그 분수대 물 속에 여자를 잡아 넣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가 분수대를 돌 때 여자가 발견되지 않으면 괜히 분수대의 물을 주위에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뿌리기도 한다. 같이 구경나온 독일 사람들도 요즘 보기드문 전통적인 카니발 행사라며 재미있어 했다.

이렇게 날잡고 기괴한 복장을 하고 요란법석을 떠는 것은 그저 옛부터 내려오는 재밋거리이기도 하겠지만, 그 속에 복을 기원하고 나쁜 기운을 몰아내려는 집단적인 소망 또한 담겨있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 옛적의 탈춤놀이가 이와 비슷했을까? 하지만 요즘 한국의 어느 마을이 이만한 규모로 전통 놀이를 보존하고 즐길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지난 백년을 너무도 숨가쁘게 지내오는 동안 우리가 뿌리밖을 대지를 아주 잃어버리고 만 것은 아닐까 - 카니발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그런 쓸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by khakii | 2009/02/25 06:17 | 여행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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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현호 at 2009/04/05 00:09
세종아, 이사는 잘 했는지 궁금해서 연락한다.
영국에서 자리 잡는대로 사진도 올려줘.
몸 조심하고...
Commented by khakii at 2009/04/06 05:48
담주에 다시 애버딘으로 돌아간다. 너야말로 잘 지내는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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