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놈들의 제국주의 (우석훈)

짐싸는 틈에 잠시 여유를 부려 여름에 한국에서 읽었던 책 [촌놈들의 제국주의]의 독후감을 써본다.




우석훈은 한국 자본주의가 식민지를 경영할 능력은 없으나 식민지를 간절히 필요로하는 '촌놈들의 제국주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우선 한국의 경제적 위상은 놀랄만하게 높아졌다.

[p.127] 경제발전 단계상 지금의 한국은 다른 나라의 침략이나 경제적 종속에 대해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아니라, 오히려 인근의 다른 약한 나라가 한국 자본의 침탈 만행에 대해 걱정해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의 기업들은 말레이시아나 미얀마와 같은 1차 자원 수입국은 물론, 중남미와 아프리카의 국내정치에까지 점차 관여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10년 전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국제경제의 맥락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한국의 경제구조는 매우 불균등하고 불안정하여 외부식민지를 필요로한다.

[p.106] [한국은] 경제규모로는 세계 10위권이지만 대외 의존도와 건설산업 의존도 등 여려가지 지수에서 OECD 국가의 평균치와는 매우 동떨어진 모습을 보여주는, 그야말로 가장 불균형한 구조로 왜곡된 국민경제를 운용하는 나라이다. 이런 불균형을 시정하자는 얘기는 사실 들어보기 어려웠던 지난 5년간, 노무현 대통령의 다소 전도된 '균형발전' 실험은 그나마도 실패했다. 이런 판에 한국 경제가 외부식민지를 추구하는 제국주의형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비상식적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 시스템은 거대 규모의 신규 시장 확보와 새로운 1차 자원 확보 없이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고사하고 그대로 서 있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p.144] 한국 경제가 '촌놈들의 제국주의' 단계로 내몰릴 수밖에 없도록 내부에 불균형이 커진 이유로 나는 한국이 중남미형 경제로 전환되는 와중에 있다는 작업가설을 사용한다... 한국 경제의 현재 전개 과정은 30년 전 중남미에서 일반적으로 벌어졌던 이런 '미국화'와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다.


정치권에서도 아류 제국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생겨나고 있다.

[p.104] 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의 경우, 좌파 혹은 진보를 자임하다 '중도'라는 독특한 정치지형으로 이동한 뒤,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평화경제' 주장을, 점차 북한을 출발점으로 하는 '북방대륙 개척론'으로 바꿔갔다. 북한을 관통하여 러시아를 지나 유럽까지 가는 길만이 국민 경제가 번영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강변하기까지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 중심국가론'이 이제 평화경제론을 넘어 북방 진출로 '업그레이드'되었던 것이다. 당시 정동영 후보의 연설 일부만을 발췌해서 편집한다면, 19세기 후반 혹은 20세기 초반 어느 제국주의 국가의 지도자가 국민들에게 적극적인 해외 진출과 식민지 개척의 필요성을 강변한 연설문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을 것이다.
[p.105] 2007년 민노당 권영길 후보의 주장도 사실 이런 정동영식 소제국주의론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 그가 당내 경선과정에서 내놓은 경제공약집에서는 한국 경제의 '3대 동력'이 다음과 같이 제시되었다.
첫째, 지역경제 공동체에 기반한 '노동중심 혁신 클러스터'를 제시한다.
둘째, '한번도 통일경제 건설'을 통해 제2의 한반도 산업혁명을 이끌 것이다.
셋째, 북방대륙 경제권 개척'을 통해 제4의 세계 경제권을 주도할 것이다.
이는 결국 북한과 통일을 이루고 그 여세로 북방대륙 진출을 이루어 소위 '제4의 세계 경제권'을 만들어냄으로써 세계를 주도한다는 것인데, 이런 황당한 주장은 한국의 극우파들도 쉽게 입에 담지 않을 민족패권주의적 발상이요, 전형적인 제국주의 담론이다.


그러나 독자적으로 전쟁을 벌일 능력이 없는 한국이 현 단계에서 고전적 의미의 제국주의 국가가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그에 따르면 이렇게 막힌 제국주의적 열망이 에돌아 표출된 것이 한미 FTA에 대한 국민 과반수의 지지이다.

[p.98] 말하자면 FTA로 인한 개방과 제도 변화의 부정적인 폐혜에도 불구하고 과반수 이상의 국민적 지지가 가능했던 것은, 중부나 국민이 이렇게 한미 FTA를 일종의 '미연방' 가입과 유사하게 생각했던 측면이 있었다는 얘기다... 이 상황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가장 쉬운 방식은, 한국 자본주의가 이미 식민지를 필요로 하는 제국주의 단계에 접어들었으나 단독으로 제국주의를 구현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국을 등에 업고 사실상 제국주의로서 기능하려고 한다는 가설에 있다.


이런 경제의 위기를 돌파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떠오른 것이 내부 식민지로서의 북한 진출이다. 그러나 그에 따르면 그것도 미봉책에 그칠 것이다. 왜냐하면 북한 경제의 규모가 너무 작고, 진출 과정에서 남한의 왜곡된 구조를 확대재생산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p.149] 여기서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개방 과정에서 토지 소유와 국토 생태관리 등 제도 정비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 전역에서 벌어졌던 부동산 투기가 똑같은 방식으로 북한 경제에서 재현되는 경우이다. 끔찍하기는 하지만, 향후 북한의 개방 과정에서 10년 내에 이러한 악몽이 눈앞에 나타날 확률은 대단히 높다.
[p.162] 일반적으로 북한과의 경제 통합이 진행되면 국방비 지출이 덜어지고 대신 더 많은 예산이 복지와 생태 혹은 사회간접자본 쪽으로 옮겨질 것이라 여기지만, 사실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왜냐하면, 기계적으로 해석하면 오히려 방어 범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사실 자본주의는 전세계적으로 자원의 한계에 부딪쳐서 위기를 맞고 있다.

[p.199] 도넬라 메도우 여사, 그녀의 연구 파트너였던 전남편 데니스 메도우, 그리고 조르겐 랜더스가 '로마클럽보고서'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하다가 2001년 메도우의 급작스러운 죽음 이후 남겨진 연구자들이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때까지 진행된 연구를 책으로 발간했는데, 그게 바로 [성장의 한계, 30년 만의 업데이트]이다. 이 책의 요지는, 전체적으로 석유를 비롯한 자원의 공급량이 여전히 늘어나기는 하겠지만 중국을 포함한 개발도상국의 자원 소비가 워낙 빠르게 증가하게 되어 결국 이 수요량을 따라갈 수 없는 순간이 오게 된다는 것이다. 물, 석유, 유가금속 등 대부분의 자원에서 부족 현상이 일반화될 시점은 2050년 정도이며, 그런 상태에 이르기 전에 이미 국지적 자원 갈등이나 전쟁과 같은 현상이 대략 2030년 정도에 나타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p.200]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이라크 전쟁 역시 최초의 본격적인 '미래형 자원 전쟁'으로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이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미국 부통령인 딕 체니가 중심이 되어 작성한 에너지 특별연구팀의 보고서는, 향후 미국이 석유를 해외 수입에 심각하게 의존하게 됨에 따라 정치적 독자성을 잃을 수도 있다는 점을 장기적 전망에 근거해서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한중일의 경제 구조는 이런 위기에 특히 취약하다.

[p.201] 외부 자원이 끊임없이 투입되어야 움직일 수 있는 자원 의존형 경제구조라는 점에서 한중일은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 특별한 외부 힘의 개입 없이는 앞으로 20년 내에 '자원재순환형 경제' 혹은 '제로투입경제', 아니면 '생태적으로 유지 가능한 경제'로 전환될 가능성은 '제로'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이나 중국이 추구하는 고도성장 전략이 지금처럼 진행된다면, 앞으로 최소한 지금의 규모보다 2배에서 3배에 해당하는 석유와 유가금속 등의 외부 투입이 계속해서 필요할 것이다. 이런 판이니, 이 세 나라는 당장이라도 자원형 식민지가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20년 후에 그렇게 많은 석유를 공급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스스로 제국이 되는 길 외에는 거의 없다.
[p.202] 사실 한중일의 전쟁 개연성을 가장 높이는 것은 이 자원수송로의 확보를 둘러싼 군비 경쟁이다. 중동에서 오는 대부분의 해상수송로가 중국 근해를 거쳐 들어오게 되어 있다. 기본 구조만으로 본다면,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해상봉쇄를 통한 에너지 보급망 차단만으로도 국민 경제를 언제든지 마비시킬 수 있는 매우 위태한 나라들이다.


문제는 정유 및 석유화학 산업과 비대한 건설산업이다.

[p.210] 한국과 일본의 경제구조에서 정유 산업과 석유화학 산업의 비중은 무시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편인데, 일본식 표현을 빌리자면, '중후장대형 산업'이 바로 이 나라들의 경제가 1970년대를 지나면서 주축으로 삼았던 경제축이어서 그렇다. 물론 뒤늦게 경제발전에 들어선 중국의 경우도 유사한 발전 패턴을 가질 것... 그렇다면 이 군산복합체와 정유 및 석유화학 등 에너지 분야의 큰 형님들을 데리고 직접 전쟁으로 나서게 될 전쟁산업의 실질적인 모사꾼이자 간판 타자 역할을 하게 될 산업은 무엇일까? 한국과 일본의 경우는 이건 누가 보아도 건설산업이다... 선진국이라고 하기에는 가공할 정도로 높은 건설업 비중을 보여준 일본 경제를 개번 맥코믹은 1998년에 '토건국가'라고 지칭한 바 있다.([일본, 허울뿐인 풍요])... 한국은 IMF 직전에 26%까지 건설 지출액 비중이 높아져서 1차 조정 국면을 맞았지만, 지난 5년 동안 토목자본의 비중이 20%선까지 높아진 상태다... 게다가 산업비중의 크기는 물론이고 대통령을 비롯한 실질적 정치권력까지 토목자본이 다 가지고 있는 경우는 전 세계적으로 지금 한국 외에는 전례가 없다. 만약 일본을 토건국가라고 불러야 한다면, 한국이야말로 '하이퍼 토건국가'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지킬 수 있는 산업구조로의 재편이 절실히다.

[p.214] 전쟁으로 덕을 보게 될 사람들이 직업군의 50%를 넘지 않게 하는 것이 산업구조적인 관점에서 본 평화의 1차 조건이고, 전쟁이 벌어지면 "쫄딱 망한다"라고 할 사람들이 50%를 넘어서는 것이 평화의 2차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사회 전반에 평화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가 있어야 할 텐데, 이 조건은 평화산업 없이는 만들어내기가 아주 어렵다.


또한 세력간의 균형에 의한 정치적 조정능력도 매우 중요하다.

[p.253] 완벽하게 '제국'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불완전하게나마 지키고 있는 것은, 절차가 아니라 세력들 사이의 균형이다. 한국 정치에도 절차는 있지만, 서로 갈 길이 다르거나 사회적 기능이 다른 세력들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과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이 바로 파시즘으로의 전환을 거치면서 한국 경제가 민족팽창주의라는 단일한 목표를 가지고 '촌놈들의 제국주의'에서 진짜 제국주의로 나아가게 되는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조건이다.





사실 요즘 미국의 금융 위기도 그렇고,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참 흉흉해 보인다. 역사는 심각한 경제 위기 뒤에는 파시즘의 출현, 그리고 전쟁의 발발이 기다리고 있음을 가르쳐준다. 전쟁까지는 아니더라도 앞으로 수십년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 고단하고 불안한 세상일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마음 단단히 먹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거짓 선전에 혹하지 말고, 상식과 평화를 지향하면서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by khakii | 2008/09/28 07:00 | 책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

트랙백 주소 : http://khakii.egloos.com/tb/1815772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준구 at 2008/10/06 02:55
그러게요. 상식...

A 정도 가치있는 일을 하면 대체로 B쯤 돈 번다라는 대충의 상식 함수가 있다고 할 때, 그동안 미국에서, 특히 finance쪽에서는 A 정도 하면 100000000000*B만큼 번다는 꿈나라(=비상식적인) 얘기를 오랫동안 들어왔죠.

기본적으로는 약소국 '삥'뜯어서 벌어먹는 제국주의를 적당히 민주주의 등으로 포장해온게 첫번째 문제인데, 더 큰 문제는 그 뜯어온 '삥'을 신용카드 돌려막기 식의 뻥튀기로 불려먹는 놈들이 많다는 점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네요. ㅡ.ㅡ;; 미국놈들은 그 뻥튀기를 배터지게 나눠먹다가 이제서야 헛배불렀던 것이라는 점을 알아챈 듯...

노동가치론이 본격적으로 재조명 받아야할 때가 아닌지...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