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학교에서 배운 수학

한국의 수학교육이 문제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지만, 나는 그 말에 별로 수긍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생각하기 마련인 '저기 어디 선진국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수학교육'은 사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내가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학교에서 배웠던 수학 중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 몇 가지만 적어보도록 하겠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국민학교 4학년까지는 '슬기로운 생활'을 배우다가 5,6학년 때는 산수와 자연을 따로 배웠다. 적어도 우리 세대가 배웠던 국민학교 6학년 산수 교과서에 원의 넓이를 구하는 구분구적법의 아이디어가 그림과 함께 설명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그림을 구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기본적으로 원을 폭이 좁은 부채꼴로 조각낸 다음 각각의 부채꼴을 엇갈리게 붙이면 직사각형에 가까운 모양의 띠가 얻어진다는 내용이다.

중학교 3학년 수학 교과서에는 유클리드 기하학의 기본이 엄밀한 논증과 함께 소개되어 있었다. 그 부분만 열심히 공부해도 수학에서 요구하는 논리적 엄밀함이 무엇인지를 체득할 수 있을 정도로 특히 잘 쓰여진 부분이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중학교 수학 교과서에는 유클리드 기하학 말고도 한붓 그리기 문제, 도넛과 커피잔이 위상 동형(homeomorphic)이라는 사실, 볼록 다면체의 오일러 정리(꼭지점의 갯수 - 모서리의 갯수 + 면의 갯수 = 2), 그리고 정다면체가 5가지 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한 설명등 위상과 기하 분야에서 학생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할만한 많은 예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한국의 수학책에 딱딱한 공식만 나열되어 있다는 말은 기억의 착오일 뿐이다.

고등학교에서 배운 많은 수학 중에서 내게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0과 1 사이에서 y = x^2 그래프 아래의 면적 A를 구하는 문제였다. 굉장히 평범해 보이지만 이 문제에는 상당히 많은 내용이 담겨있다. 다들 알다시피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0과 1 사이의 x축을 n 등분한 다음 그래프와 외접하는 폭이 좁은 직사각형들의 넓이의 합 S_n과, 그래프와 내접하는 폭이 좁은 직사각형들의 넓이의 합 T_n을 구한다. 그러면 A는 항상 S_n과 T_n 사이에 있는 값이 되는데, n을 무한대로 보냈을 때 S_n과 T_n의 극한값이 1/3로 일치하므로, A = 1/3이라는 결론을 얻는다.

이 문제의 포인트는 (1) A가 직사각형이나 삼각형, 원 같이 우리가 넓이의 공식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 아닌데, (2) 그 정확한 값을 구해냈다는 점이다. 구분구적법의 각각의 단계는 근사값을 줄 뿐이지만, 그 극한은 정확한 값을 준다. 여기에서 극한 개념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보다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 풀이 과정에서 우리가 사용한 넓이의 성질은 (1) 두 변이 각각 a, b인 직사각형의 넓이는 ab이다, 와 (2) 도형 A가 도형 B를 포함하고 있으면 A의 넓이는 B의 넓이보다 크거나 같다, 의 두 가지 뿐이라는 사실이다. 혹시 당신이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지 않았다면 이 점을 곰곰히 생각해보기 바란다. 넓이란 과연 무엇인가? 도형이 자치하는... 넓이? 의외로 넓이라는 단순한 개념을 만족스럽게 정의내리기 힘들다는 사실에 놀라게 될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 이 문제의 풀이를 보면서 수학적 사고의 힘에 감탄을 했다. 그리고 그런 작은 감탄들이 모여 나를 수학의 길로 이끌었다. 그 모든 것들이 한국의 학교 수학 교과서에 들어있었다. 한국의 수학교육은 그렇게 별볼일 없는 놈이 아니다.

by khakii | 2006/11/13 03:12 | 수학 이야기 | 트랙백(1) | 덧글(3)

트랙백 주소 : http://khakii.egloos.com/tb/1450941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Tracked from 환수네 집 at 2006/11/18 12:04

제목 : 초중등 수학의 재발견.
중고대학교 동창 친구의 블로그 letters of two lands에서 내가 학교에서 배운 수학이라는 제목의 글을 읽으면서 무릎을 탁 칠 수 밖에 없었다. 이미지 출처: Wolfram MathWorld 초등학교 때 저런 그림으로 시작해서 원의 넓이가 라는 식으로 구해진다는 것을 배웠고, 나중에는 같은 적분을 통해서 면적을 구할 수 있게 되기까지... (극좌표에서 적분하는 법이 고교 교육과정에 들어있는지는 확실치 않음) 우리 교육과정에서는 사실 ......more

Commented by 이레 at 2006/11/14 16:03
박세종, 화이팅! 그리고 만세다.
Commented by M at 2006/11/26 06:39
한국 수학 교육의 문제는...

저런 훌륭한 수학적 사고가 아닌, 당장 문제를 풀 수 있냐 없냐, 그래서 점수를 몇 점 따냐 못 따냐에만 모두가 혈안이 된 것에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고등학교 때 정석만 보다가 수학 교과서를 한 번 읽어 보고는 굉장히 잘 쓰여져 있던 책이라 놀랐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도 정석"만" 보게 되는 많은 이유가, 왠만한 유형의 문제가 다 나와 있어서, 왠만한 시험문제에 잘 적응할 수 있어서가 아닌가 싶네요. 수학적인 사고력보다는 수학점수를 높이기 위해서라고나 할까요...

Commented by 무소의뿔 at 2008/12/07 10:02
저도 수학 과외를 하다가 수학교과서가 잘 만들어졌다는 걸 알게되었어요. 왜 집합이 항상 수학책 맨 앞 부분을 차지하는 지도 그 때 알게되었죠.
어째거나, 잘 읽고 갑니다.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