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밤

작년 시월의 어느 저녁 느지막히 오버볼파크에 도착해서 맥주와 함께 간단히 요기를 하면서 연구소에서의 첫 글을 썼는데, 이제 어느덧 연구소를 떠날 시간이 되었다. 지금은 도서관에 널부러져있던 논문과 책들을 정리하고, 빨래감을 세탁기에 집어넣고, 카페테리아로 돌아와서 마지막으로 맥주를 한 잔 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여기 있으면서 다른 방문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혼자 외롭지 않냐는 것이었다. 사실 나중엔 그 질문이 지겨울 정도가 되었는데, 나는 정말로 별로 외롭다고 느끼지 않았다. 여기에서 밥먹고 공부하다 운동 좀 하고 자는 생활 패턴이 그 동안 유학 생활을 하면서 만들어온 생활 패턴과 별로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간에 결혼을 하긴 했지만 각자의 학업 때문에 방학 때를 제외하고는 줄곧 떨어져 있기도 했고.

연구에 대해서는 그럭저럭 합격점을 받을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다. 어느 것도 완결짓진 못했지만 논문거리를 세 개 정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뭐, 눈이 번쩍 뜨일만 한 대단한 결과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연구의 흐름이 이어지는 것은 다행이다. 앞으로 몇년 포닥 생활을 하는 동안 좀더 근사한 결과를 만들어내야 성공적으로 학계에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 있는 동안 주말에 근처 도시들을 둘러 보기도 했다. 이제 돌아보면, 가까이 칼스루에와 만하임에 고등학교 동기 친구들이 있어서 신세를 질 수 있었고, 처음 혼자 가 본 작지만 아름다운 프라이부르크, 친구들과 같이 갔던 프랑스의 디종과 하이델베르크, 지난 가을의 어느 날씨 좋은 날 혼자 자전거를 타고 하루 종일 걸려서 갔던 프로이덴슈타트가 기억난다. 지난 주말에는 (오바마의 방문 때문에 법석이라 슈트라스부르크에는 결국 가보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독일 국경에 인접한 스위스의 바젤에 다녀왔다. 그 전날까지 같이 연구하는 친구들과 문제에 파묻혀 지내다가 계획도 없이 찾아간터라 많이 구경하진 못했지만, 꼭 느낌이 프라이부르크와 디종을 섞어 놓은 듯 했다. 바젤에서는 뮌스터에 찾아갔다가 결혼식을 하고 나오는 커플을 구경하고, 라인 강을 건너는 나룻배도 타 보고, 오버볼파크에 있는 동안 친절하고 능숙하게 사무를 처리해 주었던 사무실 직원들에게 선물할 스위스 초콜렛도 사고, 문득 들어간 오래된 교회에서 마침 콘서트를 준비하는 음악가들의 연주를 듣기도 했다.

오버볼파크가 자리한 흑림지대의 산 속에는 많은 야생동물이 살고 있다. 나는 운동삼아 눈 쌓인 겨울산을 오르내릴 때마다 무수히 찍혀 있는 동물 발자국을 보면서 그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오버볼파크에 도착한 첫 주 어느 날, 아침을 먹고는 문득 연구소 뒷 산의 경치가 궁금해져 혼자 산길에 올랐었다. 아침 안개 자욱한 낯선 산길을 걷다가 그날 난생 처음으로 야생 사슴이 산길에 고개를 빠끔이 내밀다가 나를 보고 후다닥 가파른 산등성이를 뛰어 내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는 다섯 달 동안 무수히 산길을 걷고 달렸지만 산짐승을 다시 보지는 못했었다.

어제, 이제는 길어진 낮의 기운이 한풀 꺾일 무렵, 최근에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된 오르막이 제법 가파른 산길을 마지막으로 혼자 달리다가, 처음 여기 왔을 때 봤던 것과 무척 비슷해 보이는 사슴 한 마리를 저만치에서 다시 볼 수 있었다. 작년 시월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에서 그 사슴은 두 앞다리를 걸치고 산길에 올라서더니 이쪽을 흘끔 돌아보고는 성큼 산등성이를 타고 숲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내가 어제 보았던 사슴이 작년 시월의 그 사슴이었을까? 사슴을 마주친 다음 모퉁이에서 내려다보는 짙푸른 숲은 부드러운 늦은 오후의 봄 햇살에 조용히 잠겨 있었다.

이곳에서의 경험이 내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는 다시 속세로 돌아간 후 시간만이 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아직 성급하긴 하지만, 과분한 주변의 도움 덕분에 내가 조금씩이나마 성장하고 있다는 희망섞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훗날 다시 이 곳에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때까지 내가 만났던 그 사슴도 여기 숲 속을 자유로이 누비고 있기를.

by khakii | 2009/04/09 07:34 | 사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

Wolfach Carnival




독일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유명하다는 말은 독일 오기 전에 들어서 나름 기대하고 있었는데, 카니발은 언제하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오늘이 (오래 계속되는 카니발 행사 중에서 가장 큰) 카니발 마지막 날이라고 해서 다른 워크샵 참가자들과 함께 아랫동네에 내려가서 오후 한나절 구경을 했다. 인구가 6천밖에 안되는 작은 마을인데 카니발 행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3천이라니까 정말 온 마을이 함께하는 잔치라 할만 하다.

오후 2시경에 아이들의 행진부터 시작해서 치렁치렁한 드레스에 양산을 받쳐든 여자들과, 각종 광대와 마녀, 괴물 복장을 한 사람들이 차례로 행진을 하더니, 현장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바로 삶아주는 소시지와 커다란 프렛첼 빵으로 요기를 하고는, 다들 동네 술집에 들어가서 맥주들 들이키면서 왁자하니 놀다가, 오후 5시경부터 카니발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마지막 남자들의 행렬이 시작되었다.

남자들의 행렬은 우선 요란하고 시끄럽기가 그지 없는데, 행렬에 참가한 남자들이 하나씩 소리내는 도구 - 뿔피리, 딱딱이, 냄비, 호루라기, 기타등등 - 을 들고 있는 힘껏 소음을 내는 것이다. 또 행렬에 참가하는 남자들은 반드시 인조 코를 달고 모자를 쓰는데, 코 장식도 상점에서 팔 듯한 평범한 인조 코부터, 크리스마스 장식, 애기 젖꼭지, 장미꽃 등등 종류도 다양하고 크기도 천차만별이다. 이 남자들이 길게 열을 지어 마을 중심가 - 그래봐야 좀 널찍한 길 하나일 뿐이지만 - 를 꾸불꾸불 돌아가며 상점들과 동사무소, 파출소까지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계속 행진하는 것이다. 그러면 예컨대 빵집에서는 예의 커다란 프렛첼 빵을 내어 행렬 참가자들을 대접한다. 이 행렬의 절정은 마을 중심가 한쪽에 있는 분수대를 도는 것인데, 남자들의 행렬에 몰래 끼어든 여자가 발견되면 주위 남자들이 그 분수대 물 속에 여자를 잡아 넣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가 분수대를 돌 때 여자가 발견되지 않으면 괜히 분수대의 물을 주위에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뿌리기도 한다. 같이 구경나온 독일 사람들도 요즘 보기드문 전통적인 카니발 행사라며 재미있어 했다.

이렇게 날잡고 기괴한 복장을 하고 요란법석을 떠는 것은 그저 옛부터 내려오는 재밋거리이기도 하겠지만, 그 속에 복을 기원하고 나쁜 기운을 몰아내려는 집단적인 소망 또한 담겨있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 옛적의 탈춤놀이가 이와 비슷했을까? 하지만 요즘 한국의 어느 마을이 이만한 규모로 전통 놀이를 보존하고 즐길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지난 백년을 너무도 숨가쁘게 지내오는 동안 우리가 뿌리밖을 대지를 아주 잃어버리고 만 것은 아닐까 - 카니발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그런 쓸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by khakii | 2009/02/25 06:17 | 여행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만하임의 크리스마스 마켓



소박하니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맛있는 독일 소세지도 먹고, 감자전 같은 것도 먹고, 글뤼바인도 처음 마셔봤는데 쌀쌀한 날씨에 마시니 나름 괜찮더라. 기념으로 조그만 산타 조각 세 개를 샀다. 하나는 우리 가지고 나머지는 선물할까 생각중.

by khakii | 2008/12/13 10:23 | 미분류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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